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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인하대학교 동문회

통합게시판

[자기계발] Here I come New York!

최강일
2004.06.07 15:32 1,568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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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 만불만 도와주십시요. 미국가서 박사학위 받아가지고 오겠습니다.”대학원 1학년생 25살 강치가 갑자기 계획을 바꾼것은 가슴에 원대한 꿈이 있어서도 아니고 누구처럼 돌아와 조국에 봉사하겠다는 신념도 아니였다. 다만 공돌이가 싫어서였다. 대학때 산업시찰, 졸업여행이라는 이름으로 지방에 있는 현대, 포항제철, 삼성, 대우등 회사를 돌아보면서 그리고 잠깐 동안의 대우중공업 연구소 생활 동안 하나같이 짧게 머리깍고, 작업복입은 산업의 일꾼들이 자신이라는 생각을 하자 천성적으로 가지고있던 획일에 대한 알러지가 작동을 한것이다.

"This is not for me."

역사를 좋아하던 강치가 공대를 간것은 순전히 밥벌어 먹기 좋은쪽으로 선택하라는 아버지의 영향이었다. 오늘 그 아버지에게 책임을 지라는 듯이 만불을 요구하고 있는것이다.
“너 사귀는 아가씨는 어떻하고..”
“석사 마치고 와서 결혼하겠습니다”
“사람 마음은 떨어져 있으면 변한다. 결혼하고 가라”
미리부터 강치의 집을 들락거리며 할머니로부터 여동생까지 로비를 한 강치 여자친구의 로비가 결과를 맺는 순간이었다.

이렇게 갑자기 내려진 결혼 결정은 급기야 출국 하루 전날 이태원의 한 호텔을 찾아 전격적으로 치루어지고 사별을 예감하신 할머니의 눈물젖은 배웅을 받으면서 결혼자금 겸해 현명하게 지출을 허락하신 향토장학금 1만불을 들고 우리의 강치는 김포공항으로 향했다.

할머니와의 작별에 눈물까지 보였던 강치는 공항에서 예상치못한 친구를 만나서 기분이 좋아졌다. 학사장교로 막 입대해 훈련중에 있던 친구가 어제 결혼식도 못갔는데 오늘 안 보내주면 탈영하겠다고 협박하고 나왔다는 설명과 함께 하얀 봉투를 쥐어준다.
“이게 뭐야 임마!”
“그냥 받아”
그리고 진한 포옹.. 남자끼리도 포옹하면서 짜릿한 기분이 들수있구나. 강치는 그때 처음 알았다.

생전 처음 비행기를 타는것은 강치나 아직도 부케를 손에 든 와이프나 마찬가지였다. 여행에 대한 흥분보다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묘한 두려움.. 그리고 불안.. 그나마 이 두사람을 위로한것은 스튜디어스 아가씨들이었다. 신혼부부라고 샴페인도 가져다 주고 “너무 좋겠어요” 부러워도하고.. 조금 정신이 들자 아까 친구가 준 흰 봉투가 생각났다. 만원짜리 3장… “어머! 군인 아저씨가 무슨 돈이 있다고..” 하고 말하는 와이프에게 “자식! 줄려면 달러로 주지 한국돈을 어디 쓴다고..” 핀잔하듯이 이야기하는 강치의 눈가가 약간 붉어지는것은 샴페인 때문만은 아닌것 같았다.

귀가 멍 한 가운데 닭장속에 갇혀 음식을 받아먹는 암탉, 수탉이 되어 지루한 열 대여섯 시간을 보내고 케네디 공항에 다달았다는 멘트에 창문 가리개를 올렸다. "Gosh!" 뉴저지 해안가를 따라 펼쳐지는 밤 야경이 서울 촌놈 강치의 입을 다물줄 모르게 한다. 그러나 흥분도 잠시. 마중 나온다는 친구는 나왔을까? 작은 걱정.. 뉴욕의 까만 하늘만큼이나 보이지 않는 미래에 차라리 강치는 무념에 빠진다. 착륙후에도 지리하게 기다리다 드디어 비행기 문이 열리고 세관으로 향하는 강치의 두손이 저절로 꽉 쥐어진다.

"Here I Come, New Y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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